혼자 사는 중고년층의 새로운 주거형태로 요즘 일본에서 ‘컬렉티브 하우스(collective house)’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집합주택’이라고도 부르는 이 주택은 여러 가구가 공동주택에 모여 살면서 ‘거주는 독립적으로 하되 일상 생활의 일부분을 함께 하는’ 새로운 주거 방식을 말합니다. 각자 자택에서 생활하면서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코 하우징’(co-housing) 개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전체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와 달리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면서도 공동체를 통한 이웃 간 정(情)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컬렉티브하우스의 이 같은 매력이 인연(因緣)이 절실한 일본의 독거 중장년층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NPO(비영리 민간사회단체) ‘컬렉티브 하우징’에 따르면 최근 컬렉티브하우스 설명회에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 경험이 있는 50~60대 여성들과 혼자 사는 중장년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도쿄 히가시닛포리(東日暮里)에 ‘컬렉티브하우스 칸칸모리’라고 하는 일본 최초의 컬렉티브하우스가 있습니다.
12층 건물의 일부 층 원룸 28개실에 26세대(49명)가 입주해 살고 있습니다. 입주민들은 독신 고령여성을 비롯해, 정년퇴직한 전직 회사원 남성, 맞벌이 부부 등 구성이 다양합니다. 연령대도 갓난아이에서부터 80세 노인까지 전세대에 걸쳐있습니다.
칸칸모리의 생활을 잠깐 들여다보겠습니다.
핵심 키워드는 ‘커먼 밀’과 ‘커먼 다이닝’입니다.
먼저 커민 밀(Common Meal. 공동식사).
칸칸모리에서는 주 2~3회 공동 식사회가 열립니다. 참여 여부는 자유이고 사전 신청제입니다. 다만 입주자는 월 1회 의무적으로 식사당번을 맡아야 합니다.
커먼 밀의 그날 메뉴는 2~3명의 식사당번이 정하고 요리하며, 식비는 평일 1인당 400~500엔 정도입니다.
식재료 구입에서 예산 관리까지 모두 식사당번 그룹인 ‘커먼밀 팀’(5명)에게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칸칸모리에는 이 같은 활동그룹이 20개가 넘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팀은 야채나 화초 기르는 ‘가드닝 팀’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공동 리빙룸인 ‘커먼 다이닝(Common Dining)’.
식사회 등 공동체 생활은 약 45평(148.76제곱미터)크기의 이곳 다이닝룸에서 이뤄집니다.
이 곳은 입주자라면 누구든 언제나 이용이 가능합니다. 와이파이(wifi)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전에는 주로 서재로 활용하거나, 재봉 등 취미생활, 주부들의 담소 장소로 사용됩니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활용되고, 저녁에는 이곳에 모여 술이나 음료를 나누며 환담을 즐기기도 합니다.
컬렉티브하우스의 제1 원칙은 거주자 전원이 공동 활동에 참가한다는 겁니다. 매달 한번 씩 열리는 월례회의에는 전원이 참석해야 합니다. 이 회의에서 공동생활의 규칙을 만들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습니다. 고령자들은 체력을 감안해 주로 식사보조 같은 부담 없는 일이 주어집니다.
거주자들의 개인 거처는 대개 1~2개의 방에 부엌과 욕실이 겸비되어 있습니다. 월 이용료는 7만~15만 엔 정도.
개인 공간과 더불어 리빙룸, 다이닝룸, 프로용 조리기기까지 갖춘 주방, 세탁룸, 게스트룸, 컴퓨터 오피스, 정원 등의 다양한 공용스페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컬렉티브하우스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주택 관리 및 수리용 도구를 비롯해 레저용품, 아이들 장난감까지 공동으로 소유하고 취미가 같은 입주민들의 동호회 활동도 활발합니다.
일본에는 현재 10개 정도의 컬렉티브하우스가 있습니다. 운영 형태는 ‘칸칸모리’와 비슷합니다. 도쿄 인근 다마(多摩)시의 ‘컬렉티브하우스 세이세키(聖蹟)’도 유명한데, 20개실에 어린아이부터 80대까지 16세대 26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용요금도 월 6~14만엔 정도입니다.
이 곳은 특이하게도 베란다가 연결되어있어서, 장기간 집을 비운 이웃 주민의 화초를 대신 돌봐줄 수 있습니다. 이웃끼리 혈연을 넘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셈입니다.
또 이 곳의 건강한 노인들은 입주민들의 아이들을 보육원에 데려다주거나 학교 마중을 가는 등 공동생활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컬렉티브하우스라는 개념은 스웨덴에서 처음 생겼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처음 고안이 됐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95년 한신대지진 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확산되지 못하다가 2011년 동북대지진이라는 재난과 저출산 고령화 가속화가 겹치면서 최근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민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퇴거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1인 고령세대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건강한 시니어들이 이웃과 함께하면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컬렉티브 하우스라는 주거형태를 눈여겨 봐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따로 또 같이’의 컬렉티브하우스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주거문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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